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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버리고 제주로 탈출한 간 큰 백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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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충동을 완전히 억제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정복은 없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의 승리인 것이다.
- 발타샤르 그라시안 '세상의 지혜' 중에서



일반적으로 충동을 잘 조절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에 비해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충동을 잘 조절한다는 것은 당장에 추구하고자 하는 쾌락적 만족을 자신의 의지를 토대로 적절하게 조절하고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아직 이성이 자리잡지 않은 어린아이들일 수록 충동의 조절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충동을 무조건 조절하고 억제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프로이트적으로 볼 때 지나친 충동의 억제로 인해 억눌린 충동이 무의식에 스며들게 되고 시간이 지난 뒤에는 억제된 충동으로 인해 신경증이 유발되고 심한 경우 신체화 증상까지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무의식의 overflow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하루에도 열 두번씩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홈쇼핑에 떠오른 상품을 보고는 느끼는 지름신의 강림도 충동이요. 당장에라도 직장 상사에게 실컷 욕 퍼붓고 멋지게 사표를 내던지고 싶은 심정이나. 이제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노라 한 굳은 맹세를 깨버리고 싶은 마음이나...이 모든 것이 다 충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빼놓지 않는 한 마디.

"제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말 아니겠는가?


결국 오늘도 우리는 나 자신과의 싸움, 시도때도 없이 무의식을 넘어 에고의 영역으로 침략을 자행하는 충동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승리하느냐 굴복하느냐는 나에게 달려 있다.

아침 출근 길 차안에서 무시로 끼어들어 오는 앞차들에게 손가락 치켜들며 욕을 퍼붙고 득달같이 달려가서 뒤꽁무니 들이 받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열 손가락 넘게 받은 오늘 아침, 무심코 펴든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이 가슴을 찌른다.


Posted by Dreaming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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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란 언제나 증오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다.
특히 윗사람을 누르고 얻은 승리는 어리석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발타사르 그라시안Balthasar Gracian


발타사르 그라시안은 17세기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충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발타사르가 살았던 시대에서 400년이나 지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의 충고가 왜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그것은 그의 충고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그의 충고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눈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것이다.

요즘 세상, 성공을 위해서 또 출세를 위해서 아래 위 가릴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래를 누르고 승리를 거두는 것은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나보다 나은 상대, 나보다 윗사람을 누르고 얻은 승리가 더욱 가치 있게 평가받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이다. 30대에 사회적 명성을 얻은 사람들, 40대에 이미 대기업의 임원 자리에 오른 사람들, 그들의 삶은 성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는 신화와도 같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발타사르의 충고는 그저 먼 옛날 살다가신 어느 할아버지의 그 당시 세상에나 적용될 법한 그저 그런 이야기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성 싶다.

하지만 발타사르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군주에게 충고할 때에는 그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새삼 깨우쳐 주는 길잡이처럼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가 잊어버리고 있었을 뿐인 어떤 일을 상기시켜 주는 식으로 충고해야 한다.'


발타사르는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좌충우돌 경솔함을 보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만을 믿고 겁없이 덤비는 사람들, 교만함과 이기심에 사로 잡히고 공명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비수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가장 아래의 계단을 밟고 다음 계단으로 올라서야 한다. 빨리 가려고 두 칸 세 칸을 뛰다보면 발을 헛디뎌 코를 다칠 수 있다.
현대인에게 성공과 출세를 위해서는 때로는 자신보다 윗사람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을 수 있다. 설혹 경쟁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그래서 보다 나은 위치로 올라섰다 하더라도 항상 겸손함을 잊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Posted by Dreaming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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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약간의 신비감으로 포장하라. 그러면 바로 그 신비감이 사람들의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다.'

발타사르 그라시안(Balthasar Gracian)


지난번 포스팅에 이어 이번 포스팅 역시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경구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참고로 본 포스팅에 사용된 경구는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세상의 지혜(The Art of Worldly Wisdom), 이동진 역, 해누리 발간'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경구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다른 사람들의 존경심을 받기 위한 처세를 말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라시안은 자신의 의도를 명쾌하게 들려 줍니다.

'신중한 침묵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거룩한 신전이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경망스러웠으며, 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입 조심, 말 조심을 되뇌이지만, 끊임없이 가벼워져 가는 입은 나의 존재마저 가볍게 합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심을 받기 위한 의도된 행동이 되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꽃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기 위해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자체로서 아름다운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의도된 행동은 위선을 낳습니다. 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라면 더더욱 위험합니다.
향기가 뭍어나는 삶, 자연스러운 사람의 모습만으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불러일으키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가벼움보다는 침묵을 근본으로 하는 절제된 삶에서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소 실천하지는 못하는 우매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일 수 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Posted by Dreaming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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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과 지능은 우리의 행복을 떠 받쳐 주는 두 개의 기둥이다.'

발타사르 그라시안(Balthasar Gracian)


어리석은 사람은 행복해 질 수 없다고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격을 갖추어야 하고 지능을 겸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단지, 일상 우리 관념 속에 지능은 다소 '세속적'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것을 '지혜'로 바꾸고 싶습니다. 지능은 사람은 똑똑하게(clever)하게 만들지만, 지혜는 사람은 현명하게(wise)하게 만듭니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본성을 최대한 지켜 다른 사람들과 한 데 어울린 삶을 산다 하더라도, 혹은 세상에 등지고 자신만의 홀로된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인격과 지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인격은 세상으로 부터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방패와도 같은 것이며, 지혜는 세상과 소통하는 올바른 길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안으로 나를 지키고 밖으로 올바르게 소통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삶의 모습 속에서도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Dreaming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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