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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버리고 제주로 탈출한 간 큰 백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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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몇 차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저작과 관련한 포스팅을 한 바 있습니다.



처음 보통의 글을 접했을 때에는 다소 난해하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물론 번역서가 갖는 한계일 수도, 또 개인적인 몽매함일 수도 있겠으나...
하지만 한 두 편 그의 저작을 접하다 보니 그의 놀라운 통찰력에 무릎을 치게 됩니다.

여행의 기술 - 10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이레

이번에 살펴볼 보통의 저작은 '여행의 기술'입니다.
이 책에서도 보통은 그의 탁월한 통찰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
여행이라는 일상적인 삶의 이벤트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칠 법한 많은 것들을 그는 예리하게 잡아내고 있습니다.

제목이 여행travel이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여행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그냥 여행자들을 위한 하나의 길잡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천상병 시인이 노래했듯 우리 인생 역시 소풍이기에
어쩌면 그는 일상 속의 짤막한 여행을 통해 이 세상 삶을 여행하는 우리 모두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장소를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은
이렇다 할 자극이 없어 그곳이 제대로 감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어떤 불행하지만 무작위적인 연상에 의해
등을 돌리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본문 중에서 -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참으로 수 많은 존재들이 있고 그 존재들 나름대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너무도 무심하기 때문에, 혹은 너무도 친숙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그것의 가치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 곁의 누군가이건 혹은 발길에 채이는 돌덩이이건...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시에 대한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비평을 인용하면서 보통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더욱 강하게 피력합니다.

"우리 앞의 세계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보고寶庫이지만,
익숙함과 이기적인 염려 때문에
우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심장이 있어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주변의 작은 것에 대한 관심이 여행에서 무엇을 보는가 또 무엇을 느끼는가를 결정하게 된다는 그의 생각은 책의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세상을 향해 올바른 질문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파리를 보았을 때 약이 올라 파리채를 휘두를 수도 있고
산을 달려 내려가 <식물 지리론>을 쓰기 시작할 수도 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차 모든 사물을 자신만의 눈으로 보았던 훔볼트Friedrich Heinrich Alexander von Humboldt를 등장시키면서 보통은 자신의 생각을 보다 확고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같은 눈으로 같은 세상을 바라보지만 사람들마다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가는 차이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여행에 관련된 격언 가운데 '아는만큼 보인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요? 보통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습니다.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운 것이 된다.
"


하지만 보통은 그저 아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향해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위해 질문을 던져 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풍경의 진정한 소유는 그 요소들을 살피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에 달려 있다."


"관념에 안주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언젠가 출장지에서 시간이 남아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머리 속을 스친 생각이 '언제 평생에 이 길을 한 번 이라도 다시 찾아올 기회가 있을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스치고 난 다음에 눈앞을 스치는 풍경 하나 하나의 모습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은 나뭇잎의 스침도 지나는 길가에 작은 집 한 채에도 소중함이 깃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보통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Posted by Dreaming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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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건축 - 10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이레

공짜라면 양잿물도 큰 것을 마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 인터넷 서점에서 진행하던 이벤트에 혹해서(배송 당시 이 책은 자그마치 공짜 책 세 권을 등에 업고 왔다! 물론 보통의 저작들로만...), 그리고 예술과 과학의 보더라인에서 묘하게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축이라는 소재에 또 한 번 혹해서 충동적으로 결재 버튼을 눌렀던 바로 그 책이다.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새로운 저작 '행복의 건축(Architecture of Happiness)'은 삶과 인생에 대해 논해왔던 그의 정체성이 대체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만큼 색다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삶을 논하고 인생을 음미하는 이른바 '일상의 철학자'에게 삶의 공간적 터전인 '건축'이 사유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디 있으랴!

그는 특유의 통찰력으로 그리고 어디서 그렇게 쓸어 담았는지 궁금한 건축사와 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삶의 공간적 터전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일단 여기까지>-------------------------

워낙에 건축에는 문외한이라, 그저 모더니즘 건축이 대충 어떤 형세를 지니고 있고 고전주의는 뭐고 고딕은 어쩌고 정도만을 대충 어림짐작하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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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책에 소개되는 건축물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르 꼬르뷔제(Le Corbusier)의 Villa Savoye가 그것이다.
이미 건축사에 있어서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명망이 자자한 모양이고, Villa Savoye만을 수록한 도판이 출판되어 있을 정도이니 유명세를 짐작할만하다.
모르긴 해도 모더니즘 건축의 백미라고나 할까? Villa Savoye의 사진을 접하는 순간 어린 시절 미술책에 실려 있던 각종 모더니즘적인 작품들이 머리 속을 지나가는 것을 보니 일체의 장식성을 배제하고 그야말로 기능성만을 추구한 모더니즘의 간결함을 작가의 설명이 없이도 간파할 수 있다.
물론 모더니즘 작가들은 비록 장식성을 배제했다고는 하나 그 모양세만으로도 모더니즘 건축만이 갖는 장식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더 이상의 주제넘은 언급은 생략.
Villa Savoye는 Wikipidia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여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시 여기까지>-------------------------

하지만 Le Corbusier의 Villa Savoye보다 더 눈에 띄는 건축물이 있었으니,
켄 셔틀워스(Ken Shuttleworth)의 Cresent House가 바로 그것. 일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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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문외한인 나의 눈으로도 단번에 '작품'임을 알아볼 정도이니... 눈을 뗄 수가 없다.
그의 포트폴리오를 통해 영국 출신의 Ken Shuttleworth가 그 동안 어느 정도의 명성을 쌓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홍콩의 첵랍콕 공항(Chek Lap Kok Airport), 런던의 밀레니엄 브리지(Millenium Bridge) 등도 모두 그의 작품.

날렵한 초승달 모양으로 곡선 처리된 건물의 외벽과 날카로운 마감이 다소 긴장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건물 전면을 덮어버린 통유리.
Dresent House의 주변은 수 많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건물을 뒤덮은 통유리는 채광의 기능뿐만 아니라
건축물을 둘러 싸고 있는 자연과의 소통을 최대한으로 확보해 주는 통로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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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reaming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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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자아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핵심적 기준’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동물원에 가기 On Seeing and Noticing 중에서)

과연 나 자신에게 진실한 태도란 무엇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일까?
나에게 진실하다는 것은 과연 나 자신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할 수 있는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허위와 가식의 가면을 쓰는 경우를 경험하곤 한다.
그 허위가 나의 의도이건 혹은 나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건,
그 가식이 자의에 의한 것이건 타의에 의해 강제된 것이건…
'On Seeing and Noticing' Alain de Botton
'On Seeing and Noticing'
그런 세상의 삶 속에서 자아의 도덕성을 평가한다는 것은 곧 자신에 대한 준엄한 성찰이요 고해성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의 의도 범위를 벗어나, 결국 나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남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도 속여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속인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해를 입히는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가 의미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속임수가 아니라
순간 순간 우리가 스스로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본연의 감정을 속이고 감추는
아주 단순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경험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도덕성이라는 것이 굳이 성경을 펼쳐 들고 법전을 앞에 놓아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작은 감정의 흐름을 속임으로서 가식의 페르소나에 매몰되어 버리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허망함과 자괴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 역시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두고 자신의 감정과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서는
자신에게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우리도 그 동안 얼마나 나 자신을 속여 왔던가!
나의 감정을 숨기고 나의 바램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가식의 울타리 속에 나 스스로를 가두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남들을 사랑하려면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함과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떳떳하고 진실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진실한 태도를 견지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랑과 진실함은 굳이 도덕성을 언급하지 않고서라도 수치스러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것이다.

Posted by Dreaming Blue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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